내 캄보디아 이름은 떼위. 그러고 보니 내가 떼위란 이름으로 지낸지도 어언 1년하고도 반년이나 지나가버렸다. 
“왜 하필 캄보디아야?” 
캄보디아로 오기 전, 갑작스런 캄보디아행 선포에 눈을 치켜뜨고 침 튀기며 “아니, 왜?”를 연발하던 반응들이 그다지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국내에도 도울 사람들 천지인데 왜 굳이 다른 나라에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냐는 흔해 빠진 질문. 그럼에도 그 흔해 빠진 질문에 명쾌하고 호탕하게 대답을 내던진 적이 있던가. 그런 반응들 앞에서 나또한 궁색한 변명처럼 들렸을 흔해빠진 대답을 할 뿐이었다. 
“내가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야!” 

그렇게 떠나온 곳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캄보디아가 낯설고 어설픈 이방인에게 한국 NGO에서 운영하는 문화복지센터를 총괄하는 큰 업무가 주어졌다. 이 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대략 현지인 대상 한국어교실 운영, 지역 주민 대상 도서관 및 아동을 위한 이동도서관 운영, 한국 학생들의 장단기봉사프로그램 진행, 현지 NGO 발굴 및 지원 등등. 
마음만 준비해왔지 실력도 경력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가 과연 이것들을 잘해낼 수 있을까? 큰 일이 주어졌다는 부담감이 땀은 물론 혼까지 쏙 빼버리는 캄보디아의 더위와 함께 뒤엉켜 처음 얼마간은 밤잠설치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적응력 하나만은 능한 몸! 우선 스스로를 현지화시키자’는 각오로 현지어, 현지음식, 현지사람들에 다가가며 캄보디아 속으로 슬금슬금 침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백한다. 캄보디아 생활은 ‘인내’, 즉 ‘참기’ 퍼레이드였다는 것을.

1년이 한여름인 살인더위 참기, 수많은 오토바이가 뿡뿡 방출하는 시꺼먼 매연 참기, 365일내내 물어뜯는 모기떼 공격 참기, 길거리 음식 속 심심찮게 헤엄치고 있는 개미떼 참기, 여유롭다 못해 매사 느릿느릿한 현지인들의 생활패턴 참기,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비싸게 가격매기는 장사꾼들 상대로 화 참기, 검게 그을어지는 피부와 두꺼비등짝처럼 거칠어지는 손발 앞에 슬픔 참기….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현장 활동가의 사명인 ‘현지인의, 현지인에 의한, 현지인을 위한’ 일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지금 이 프로그램은 과연 이들을 진정 위한 일일까. 외국인 주제에 현지 물정도 모른 채 “내 말이 맞아!”라며 윽박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고민들은 1년 내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괴롭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센터를 방문한 캄보디아 청년들이 자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101가지 아이디어를 모아 토론하는 모습, 책을 좀체 접하기 어려운 시골 아이들이 이동도서관에서 침 묻혀가며 신나게 책을 읽는 모습, 현지 NGO들이 동네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업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내가 하고 있는 활동 이상의 멋진 대가를 받고 있음에 감사했다. 

캄보디아 문화복지센터 책임자로서 1년간의 활동계약이 끝났음에도 나는 여전히 캄보디아에 남아있다. 내 발목을 잡아끈 것은 다름 아닌 캄보디아 시골의 한 고아원 아이들. 센터 운영 당시 파트너기관이었던 NGO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아이들로, 처음 이 아이들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다. 처음 본 낯선 이에게 아이들은 푸른 하늘이 담긴 눈동자를 반짝이며 싱싱한 미소를 귀까지 걸고 달려와 이 넓고 푹신한 품에 폭 안겼다.

 

 

그 후로 틈만 나면 고아원을 찾았다. 부모가 없기에 정에 굶주렸을 테고 가난하기에 배 곪은 날이 더 많았을 텐데 참 이상한 아이들이다. 이 시골 아이들은 사랑은 받는 것보다 베풀어야한다고 생각하고 내 배가 아무리 고파도 맛난 것이 생기면 옆 사람이 세 명이건 열 명이건 아낌없이 나누고 있는 바보들이다. 믿겠는가?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사랑을 나누고, 가진 것 없어도 부자인양 무엇이든 베풀며 살고 있는 아이들이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다. 사랑은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주는 만큼 받아야한다고 믿던 부끄러운 어른에게 아이들이 말없이 알려준다. 그냥 주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행복하니까요라고. 

미소가 유난히 예쁜 그 아이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지 않게 하고 싶어 캄보디아에 기약없이 남기로 했다. 

현재 나는 현지의 열악한 의료시설에 힘이 되고자 하는 한국 한의사들을 도와 한방의료봉사를 하고 현지에 한의원을 정착시키는 일을 하면서 주말이면 아이들과 풀밭 위를 뒹굴러 고아원으로 달려간다. 나를 가족이라 여기게 된 이 아이들에게 책임감있는 가족원으로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한국에도 도와줄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까지 나가서 돕는 일을 하느냐고 하던 이들에게 이제는 편안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건 캄보디아건 그 어느 나라건 그 어디에나 다 같은 사람들이 같은 웃음을 터뜨리고 같은 꿈을 꾸며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눔이란 너와 내가 같은 꿈, 같은 희망을 갖고 있음을 느끼고 움직이는 ‘희망의 걸음마’가 아닐까.

* 캄보디아 천사들의 모습을 좀더 보고 싶으시다면 여기를 클릭!
  http://www.cyworld.com/margie


                     장미애(자원활동가, 전 한국여성재단 기획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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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이란 세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또한 그 나눔이란 여유로움에서 떼어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아주 작은 것을 나누고 보여주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겐 커다란 힘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이 나눔의 미학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재능 나눔’에 대해 참여의사를 물어왔을 때, 망설임 없이 참여하기로 결정을 했다. 
우선은 다문화가정을 위하는 일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고, 더더구나 그분들의 집에 온전한 가족사진 한 장이 없다는 말에 더욱 그랬다. 순수하게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남모르게 봉사하시는 분들처럼 많은 날들을 봉사로 지내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도 않은 나로선 봉사라면 몸을 이용한 것이거나 아니면 오로지 ‘사진’이라는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을 통해서가 전부이기에 촬영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가진 것 별로 없는 나에게도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이었다. 
평소에 알고 있던 사진인화전문 인터넷사이트에 전화를 걸었다. 기왕에 주려면 모든 마음을 다해 주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진인화와 액자까지 협찬을 받고서야 안심이 되었고 마무리를 지은 기분이었다. 혼자서 그 많은 가정을 촬영하기엔 장비문제나 시간의 배분문제 등으로 어찌할까를 고민하다가 내가 사진 강의를 하고 있는 한겨레문화센터 수강생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게도 많은 수의 수강생들이 기쁘게 달려와 주었고 자신의 장비와 시간을 기꺼이 촬영을 위해 내어주었다. 촬영을 하는 동안 그들의 얼굴이나 눈에선 즐거움과 새로움에 빛나고 있었고 촬영을 위해 자신의 얼굴과 몸을 내어주는 가족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면서 이야기를 통해서 ‘소통’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물사진을 주로 촬영하는 나로선 사람들과의 소통이 아주 중요하다. 그 사람들을 보고 느끼면서 함께 얘기하는 것이 인물사진의 묘미다. 다문화가정의 가족들이 촬영을 위해 함께 카메라를 향하고 있을 때 나는 또 알게 되었다.우리는 모두 같다고. 이러한 봉사나 나눔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참여의 횟수가 적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수강생들과 사진을 고르면서 서로가 느끼고 보았던 느낌을 말하면서 모두는 한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눈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열게 만들고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작은 손재주를 크게 여겨주시고 높게 평가해주신 재단여러분과 다문화가정의 식구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기꺼이 달려와 준 수강생에게도 감사드린다. 다음에도 이러한 작은 손재주라도 필요하다고 불러준다면 언제든 뛰어나갈 생각이다. 
감사의 시간이었다.

                        손홍주(씨네21 사진부장, 경성대 사진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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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신선한 노동의 대가에서 ‘10%를 삭감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주급으로 받던 원고료를 두 달간이나 못 받은 터여서 여기저기서 생활비를 돌려대고 있을 때였다. 

‘그래, 이런 상황에 어찌됐든 돈이 나온다니 그나마 다행이지.’ 
이렇게 자위를 하며 나처럼 급여의 90%도 받지 못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원고료의 삭감이유가 적자 경영에 따른 ‘고통분담’ 차원이라니,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당연한 일 아닌가..! 

고통분담! 
참 아름다운 말이다. 어려운 시기에 고통을 분담한다니, 그거야말로 ‘큰 나눔’이 아닐까.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과 고통은 나눌수록 적어진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이라면 당연히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건 인간적인 의무이며 책임이고 상식이니까. 

그러나 ‘고통분담’을 운운했던 그들은 상식의 뒷통수를 가멸차게 갈겨댔다. 
정직원들의 급여는 단 1%도 삭감되지 않았고, 나 같은 프리랜서들의 경우에만 10%에서 25%까지 대폭 삭감조치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미안함을 표시하지 않았고, 실업자 350만 시대에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식이었다. 근로자이면서도 노조를 결성하기 어려운 프리랜서들의 약점을 십분 이용했던 것이다. 

고통분담! 
그 말 때문에 나는 원고료가 지급되지 않는 순간에도 정기 기부를 멈출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엔 힘없고 약한 자들이 더 고통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액수는 적어도 그저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너나없이 어려운 이 시기에 ‘나눔’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환숙(방송작가 KBS라디오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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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눔 이야기
여성재단과 함께 해주신 후원회원을 소개합니다

나눔꼬리 1 9월의 어느 날, 재단 기부금통장을 살피던 유경미 대리는 유난히 눈길이 가는 이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사라고 명시된 분이 7월부터 매월 현금으로 3만원을 입금하고 계셨던 겁니다. 요즘은 자동으로 은행이 해당 날에 자동으로 돈이 빠져나가도록 해서, 은행가는 번거로움을 덜곤 하지요. 그런데 천사분은 매월 직접 은행을 방문해서 기부를 해주고 계셨던 거예요. 짬을 내서 은행까지 발걸음 하셨을 천사분을 떠올리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름다운 천사님 고맙습니다. 딸들을 위해 소중히 쓰겠습니다!  


나눔꼬리2 여성 가장을 위한 희망의 디딤돌이 되어주세요!

CMS 기부로 나눔을 더 큰 나눔으로 돌려주신 희망디딤돌 여성가장 조현진 님은 이혼 후, 현재 일곱 살짜리 아이, 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가장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틈이 중장비 직업훈련을 배워 자격증을 취득할 예정입니다. 지금 그녀는 하루빨리 안정된 곳에 취업을 하고 싶은 것이 그녀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던 그녀는 캐쉬SOS사업을 통해 보증금 일부인 200만원을 지원 받아 마침내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조현진 님은 매월 5천 원씩 3년 동안 기부하겠다는 CMS 기부약정서를 보내왔습니다. “여성가장을 위한 희망의 디딤돌이 되어주세요!”라는 약정서 문구처럼 작은 나눔을 더 큰 나눔과 사랑으로 돌려주신, 당신의 나눔과 사랑이 여성가장의 '희망'입니다. 더욱 뭉클한 건 후원자 이름을 아이 이름으로 해 달라는 가슴 찡한 바램도 전해주셨습니다. 조현진 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나눔꼬리3 9월, 새롭게 한국여성재단과 함께 해주신 후원회원을 소개합니다. 
조성연(조현진), 신지원, 김정자 님, 고맙습니다. 딸들을 위해 소중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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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 인천의 한 주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3남매와 함께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리는 막다른 선택을 한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가출하고 아이들 셋 때문에 돈벌이마저 어려웠던 이 주부는 카드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고 그날그날의 끼니와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으나 남편이 처분하지 않은 중고차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도 없는데서 절망한 것이다.

 

경찰청 자살통계에 의하면 빈곤으로 인한 자살은 2000년 454명, 2001년 525명, 2002년 600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자살자의 직업 분류에서 보면 무직자와 가정주부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이론적 논의에서 보면 여성가구주가 빈곤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가구주 가구의 비율은 1962년 12.9%에서 1990년 29.4%에 이르고 있으며 그중 빈곤층 여성가구주 비율이 1970/1973 1.68배에서 1990/1991년 2.16배로 증대되어 여성의 빈곤화 추세가 심화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여성의 빈곤화는 세습된 경우가 많으며 이에 따라 교육수준이 낮고 전문적인 기술이 부족한데서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결과적으로 빈곤여성 가구주는 자녀교육은 물론 노인부양 문제, 가족원의 건강문제 등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빈곤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는 확률이 높다.

더욱 심각한 것은 어린 자녀들이 자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 ‘인천사건’ 며칠 뒤에 대구에서는 어머니가 중학생인 딸에게 집 안방에서 매춘을 강요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미래세대의 인권이 말살되는 현상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빈곤탈출의 희망이 없는 어린이의 수는 90만명을 헤아리고 있다고 한다. 큰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하다는데서 밝은 전망을 하기 어렵다. 정부의 대책은 불충분한데 민간대책은 전무하다는데서 사회적 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눈앞에 두고 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성평등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여성재단에서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최근 본재단이 <여성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모임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러한 노력의 현실화는 정부뿐만이 아닌 사회전체의 협력으로만 가능하다. 빈곤의 악순환의 탈출구는 찾아야만 한다.

참여정부는 지향하고 있는 ‘2만불 시대’를 성취하기 위해 경제의 파이를 크게하는데 주력하는 일과 함께 사회적 약자중에서도 약자인 기댈 곳 없는 빈곤여성들의 화급한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2003-08-27] 여성의 빈곤화 어떻게 할 것인가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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