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에게희망을 5호 나눔과공감
2013년 12월, 여성재단 생일날, 행사장을 가득 메운 기부자들은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스크린에 예닮이(동화고2)와 예봄이(평내고1) 아주 쑥스럽고 무뚝뚝하게 ‘여성들의 꿈과 희망, 여성재단을 응원한다’고 생일을 축하해주었던 것. 어색함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그날로부터 2년이 지난 날, 어엿한 고사리손기부자로 성장한 그들을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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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축하영상이 만들어지기까지
마침 일요일 오전, 남매와 함께 아버지 원순재님, 어머니 손영옥님도 함께 자리했다. 2년 전 영상얘기를 꺼내자마자, 마주앉은 남매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며 쑥스러워했다. 사실 재단 축하영상 제작의 전말은 이러했다. 춘천여성민우회 대표를 맡고 있는 손영옥 대표는 창립기념식 초대를 받았지만 갈 상황이 되지 않았다. 마침 축하영상이라도 보내면 어떠냐는 제안에 바로 그날 남매는 소파에 앉혀졌고 예닮이가 직접 작성한 두 줄 축하멘트에 리허설도 없이 촬영에 임했다. 그야말로 돌발영상이었다.
“촬영을 하긴 했는데 많이 어색했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생각도 들고. 근데 재밌더라구요. 끝나고 나선 아쉽기도 하고. (맞은편에 앉은 누나에게) 누나랑 호흡이 잘 안맞았어. 맞아. 다시 하면 잘 할 거 같아요.”올 겨울, 예봄이의 아쉬움을 말끔히 없에줄 새로운 축하영상이 여성재단에 도착할것 같은 기대감이 밀려온다.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 원순재님은‘다 컸네’라며 흐믓한 표정을, “그때와 너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어요? 변성기도 지나고 키도 많이 크고 많이 편안해 보이죠”손영옥님은 말했다.
여성재단을 잘 모르긴 했지만 그해 봄, 예닮이와 예봄이는 엄마의 권유로 고사리손기부자가 되었다. 매달 1만원씩 의미 있게, 필요한 곳에 또 좋은 곳에 쓰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시작됐던 남매의 기부는 어느덧 3년째 접어들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뭔가 결심을 하게 되잖아요. 그즈음에 아이들에게 권유를 했어요. 저는 민우회 활동을 하니까 여성재단을 잘 알고 있었고 아이들도 이제 나눔을 생활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해외 또래친구를 돕는다니 신기해요
여성재단은 제가 여성운동을 하면서 100인 기부릴레이 이끔이로 참여하고 있고 마침 또래를 돕는 고사리손기부를 알게 돼서 아이들에게 적극 권유했어요.”달리 선택의 여지없이 기부자가 된거죠.
손영옥님은 가난한 나라에서 학교를 가고 교육을 받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특히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더 힘든 상황인지 알았으면 좋겠고 또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고사리손기부를 추천했다.
“용돈을 아껴 기부해요. 몇 년 전부터 용돈을 동결했는데 아직 불만은 없나봐요.”권유를 흔쾌히 받아준 아이들을 대견해했다. 예닮이와 예봄이는 “필리핀 여아들을 위한 지원은 여성재단과 잘 맞는 활동인거 같아 흐믓했어요.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만 쓰일 줄 알았는데 해외의 또래친구들에게 지원한다고 하니 신기했고요, 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필요한 곳에 잘 쓰이는 것도요.”라며 미소지었다.
예봄이는 한 살 많은 누나에게 잔소리와 응석 등을 스스럼없이 하면서 친구처럼 지낸다. 예닮이는 미술을 전공할 생각이다. 본격적인 입시를 앞두고는 있지만 웃음많은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예봄이는 올해 고딩이 되었다. 자유로웠던 중학교때와는 달리 우선 건물크기에 압도당했다. 아직 낯선 친구들과 처음 치르게 된 시험결과에 당황했던 봄날을 무사히 보냈다고 했다.
기부자가족이 말하는 나눔이란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친구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글쎄요, 저희 엄마는 잔소리가 없으세요. 어려서부터 자유롭게 놀게 해주고 좋아하는 거 하게 해주고. 알고보니 우리 엄마가 이상한 거였어요. 하하”그대신 잔소리 담당은 아버지몫. 만연체로 계속 이어지는 잔소리 아닌 잔소리의 진짜 이유를 “공부해서 남주자!”라고 원순재님은 밝혔다. “한국사회에서 공부는 중요하지요. 하지만 그걸 넘어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물을 꼭 나누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물론 잔소리 같았겠지만. 아이들이 고사리손기부를 하고 주변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것처럼 저도 일하고 얻은 매출의 일부를 기부하고 있어요.”아버지의 나눔이야기를 오늘 처음 듣게 남매는 ‘우와’하며 기부자 가족의 탄생을 축하했다.
“고사리손 기부자들의 모임을 통해 만나고 기부한 곳의 또래들의 근황도 함께 나누는 건 어떨까요? 한번쯤은 기부자들이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면 나눔에 대한 경험과 관심이 더 깊어질 것 같네요.”부부의 바람과 함께 고사리손 기부자 예봄이가 여성재단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기부금이 전해져서) 힘든 아이들의 사정이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약한 여자아이들, 어린 아이들, 아픈 아이들요.”예닮이는 조금 더 주문한다.“소중한 기부금이 투명하게 잘 쓰였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
인터뷰한후 9월 어느날, 한국여성재단이 삼일경영투명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예닮이와 예봄이의 당부를 잘 지킨 것 같아 뿌듯했던 어느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