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박영숙 선생님을 기억합니다'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3.05.23 <추모의 글> 정규리 여성환경연대 20대 으뜸지기
  2. 2013.05.23 <추모의 글>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3. 2013.05.23 <걸어오신 길> 박영숙 선생님 약력

박영숙 선생님을 그리며

 

저는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성경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가 떠오릅니다. 한국의 척박한 땅에서 진정성이라는 뿌리와 성실이라는 기둥, 그리고 열정이라는 가지와 잎으로 선생님은 여성과 환경, 민주화 운동의 숲을 일구셨습니다. 손수 차린 밥으로 수십 명의 후배 활동가들을 초대해 배불리 먹이시고 격려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살림과 돌봄의 윤리를 머리가 아닌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웁니다. 4대강을 막으시려고 시청광장에서 이포대교에서 뜨거운 뙤약볕을 피하지 않으시고 젊은 활동가와 함께 하셨던 선생님, 교육이나 워크샵때는 가장 먼저 나와 계시고 일을 하실 때는 이 일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셨던 선생님.

 

제가 박영숙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대학생 때 여성환경연대에서 인턴을 하면서 였습니다. 인턴으로서 제가 처음 한 일은, 단체의 역사와 박영숙 대표님에 대해 공부하는 것 이었습니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한국환경 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페어트레이트코리아 이사직 등을 수행하셨던 선생님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 나라의 환경운동의 역사와도 같았습니다. 환경과 여성,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본 적 없었던 제게, 선생님의 삶은 이런 가치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일관성있게 추구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텍스트 속의 위인으로 갇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해 겨울 자서전을 내실 때 이미 70대 중반이신 선생님을 보며, 내심 이제는 짐을 내려 놓으시고 당신을 위해 조금 편안한 삶을 사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선생님은 살림정치 여성행동을 조직하셨으며, 아시아 빈곤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하시고, ‘살림이’재단을 통해 새로운 시민단체들을 돕고 지원하는 일을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하셨습니다. 새로운 씨앗이 움트는 데 가장 필요한 햇빛과 물이 무엇인지를 오랜 현장 경험으로 터특하신 선생님다운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61세에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시대정신의 한복판에서 현역으로 계셨던 선생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존엄을 보여주시고 시민사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 저희는 아직 선생님을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활동하라고 하신 선생님의 유언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 그 뜻을 남겨주시고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선생님이 일생을 거쳐 뿌린 씨앗들을 시민사회 곳곳에서 뿌리를 내고 꽃을 피우고 아름드리 나무로 키워내겠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언니이자 선배이자 스승이신 박영숙 선생님, 사랑합니다.

 

 

 

여성환경연대 20대 으뜸지기 정규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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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박영숙 선생님 영전에 드리는 추모사

 

 

 

“생을 마칠 때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

 

고(故)박영숙 선생님은 이 꿈을 좇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 이 땅의 여성들이 요구하는 역할에 평생 열정을 바치시고, 5월 17일 새벽 영면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평양에서 출생하시어 떠나신 날까지 정의와 평등, 인권과 환경, 그리고 여성과 생명의 편에서 의로운 리더로 사셨습니다. 1955년 YWCA에서 처음 사회참여를 시작한 선생님은 한반도의 역사적 격변기 반세기동안 환경단체와 여성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시민단체를 설립하셨고, 세상을 떠나시던 날까지도 한국여성재단 고문,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 미래포럼 이사장, 살림이재단 이사장,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살림정치여성행동 공동대표, 아시아 위민브릿지 두런두런 이사장으로 일하시던 현역 활동가이셨습니다.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시고, 온 세상을 보듬을 만큼 넓은 품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안아주시며, 변화에 앞장서는 후배 리더들을 위해서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어떻게 하면 되겠어?’, ‘내가 뭘 하면 좋을까?’라시며 해결책을 함께 찾으시고, 평생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시며 생명사랑과 환경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선생님은 실천하는 지성의 대표이자 큰 언니셨습니다. 늘 미소와 기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후배를 이끄시던 선생님은 부드러운 권위와 카리스마의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선생님이 며칠동안 밤까지 새워가며 손수 장만하여 주신 푸짐하고 맛깔난 음식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2010년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밤을 새워가며 목토시 수백 개를 뜨셨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북한에 보내지 못하게 되자 몹시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크신 어른 한 분을 잃었습니다. 남녀가 평등하고 조화로운 사회, 지속가능한 지구환경, 민주화를 너머 평화와 통일을 만드는 일 등,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많은 과제들은 오롯이 여기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뒤를 이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들 가슴에, 그리고 이 땅의 딸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살아계실 선생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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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박영숙(朴英淑)

 

생년월일 : 1932. 5. 28

 

 

학력

1956.02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1993.07~1994.06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객원연구원 국제환경정책연구

1994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클레어홀 평생연구원

 

 

경력

1963.02~1969.02        한국YWCA연합회 총무

1970.02~1974.07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

1974 ~1985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부회장

1981.01~1985.07        한국기독교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

1985.07~1986.06        아세아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

1986.03~1988.02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1987.11~1992.05        평화민주당 부총재

1988.05~1992.05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보건사회위원회)

1992.08~2004.02        (사)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

1996.10~1997.12        녹색연합 공동대표

1998.05~2006              대통령 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1998.07~2000.01        (사)사랑의친구들 총재

1999.06~2013.05        여성환경연대 으뜸지기(공동대표)

1999.12~2010.02        (재)한국여성재단 이사장

2002.10~2003.07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2004.02~2007.05        (사)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2005.01~2013.05        (사)미래포럼 이사장

2007.03~2013.05        여성평화외교포럼 이사장

2007.05~2013.05        (주)한국공정무역 이사

2009 ~2013                  (재)살림이재단 이사장

2010 ~2013.05            살림정치여성행동 대표

2011.01~2013.05        (재)한국여성재단 고문

2012.04~2013.02        (재)안철수재단 이사장

2012.06~2013.05        (사)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 이사장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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