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숙 선생님을 그리며

 

저는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성경에 나오는 생명의 나무가 떠오릅니다. 한국의 척박한 땅에서 진정성이라는 뿌리와 성실이라는 기둥, 그리고 열정이라는 가지와 잎으로 선생님은 여성과 환경, 민주화 운동의 숲을 일구셨습니다. 손수 차린 밥으로 수십 명의 후배 활동가들을 초대해 배불리 먹이시고 격려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살림과 돌봄의 윤리를 머리가 아닌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웁니다. 4대강을 막으시려고 시청광장에서 이포대교에서 뜨거운 뙤약볕을 피하지 않으시고 젊은 활동가와 함께 하셨던 선생님, 교육이나 워크샵때는 가장 먼저 나와 계시고 일을 하실 때는 이 일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셨던 선생님.

 

제가 박영숙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대학생 때 여성환경연대에서 인턴을 하면서 였습니다. 인턴으로서 제가 처음 한 일은, 단체의 역사와 박영숙 대표님에 대해 공부하는 것 이었습니다. 녹색연합 공동대표,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한국환경 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페어트레이트코리아 이사직 등을 수행하셨던 선생님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 나라의 환경운동의 역사와도 같았습니다. 환경과 여성, 민주주의와 평화라는 가치를 함께 고민해 본 적 없었던 제게, 선생님의 삶은 이런 가치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일관성있게 추구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교과서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텍스트 속의 위인으로 갇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해 겨울 자서전을 내실 때 이미 70대 중반이신 선생님을 보며, 내심 이제는 짐을 내려 놓으시고 당신을 위해 조금 편안한 삶을 사시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선생님은 살림정치 여성행동을 조직하셨으며, 아시아 빈곤 여성의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 위민 브리지 두런두런’을 창립하시고, ‘살림이’재단을 통해 새로운 시민단체들을 돕고 지원하는 일을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 하셨습니다. 새로운 씨앗이 움트는 데 가장 필요한 햇빛과 물이 무엇인지를 오랜 현장 경험으로 터특하신 선생님다운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61세에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시대정신의 한복판에서 현역으로 계셨던 선생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존엄을 보여주시고 시민사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셨던 선생님. 저희는 아직 선생님을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활동하라고 하신 선생님의 유언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 그 뜻을 남겨주시고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선생님이 일생을 거쳐 뿌린 씨앗들을 시민사회 곳곳에서 뿌리를 내고 꽃을 피우고 아름드리 나무로 키워내겠습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언니이자 선배이자 스승이신 박영숙 선생님, 사랑합니다.

 

 

 

여성환경연대 20대 으뜸지기 정규리 드림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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