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보이지 않는 수억 개의 인연의 끈으로 이어진 수백 만 개의 구슬이 있데.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인드라망이라고 불렀데.” 

인드라망. 사람들이 서로서로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기에, 내 바로 옆 사람의 행복이 울림이 되어 내게 전해오는 거라던 이야기. 인드라망 이야기의 놀라움은 행복과 불행의 연대가 바로 옆 사람뿐만 아니라, 멀리 보이지 않게 떨어진 사람의 행복과 슬픔이 수억 개의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서 나에게까지 울림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 많은 책임감 또는 너무 넓은 세계관을 담고 있어서 나처럼 그저 평범한 사람에게는 동화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1997년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에 휘몰아쳤던 외환위기속에서, 나는 문득 인드라망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만 힘든 것 아니다, 모두가 힘들더라, 그리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더라. 하지만 그 어렵던 경제위기의 고비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짧은 연대감과 오래도록 남은 경쟁의 룰은 아니었을까? 

그러다가 또 사건이 터졌다. 이번엔 미국발 모기지론 때문이란다. 주식도, 펀드도 두 동강 났다. 난리였다. 모두들 최선을 다해 경쟁에서 이기려고 했는데도 문제는 터졌다. 새로운 룰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스스로의 잘못이 아닌데도 삶이 요동친다는 것을 한탄하거나 또는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시스템의 문제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인드라망이다. 우리가 서로의 일부이라는 진리다. 나로부터 세상의 너를 따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이 돈처럼 물질적이고 원색적인 이유에서든 세계관과 인간관에 기반한 철학적인 이유에서든,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이어진 인연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인정하자. 조금 더 의미있게 이 놀라운 진실을 맞닥뜨려보자. 

“그래, 나는 너와 둘이 아니다. 나는 너로 인해 아프거나, 슬프거나, 막막할 수 있지만, 나는 또한 너로 인해 기쁘거나 행복하거나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네가 내 바로 옆에 있든지 아니면 이름 모를 누군가로 존재하든지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껴. 나는 너와 함께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너인 거야.” 


우리는 종종 나눔과 기부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노력이고 기도이다. 또 다른 나를 위한 나눔은 진실한 노력이며, 결국은 내 자신을 위한 기도이다. 어디선가 인드라망의 희망찬 울림이 전해온다. 

김경아(호남대 행정학과 교수, 2009 100인 기부릴레이 이끔이)

 

Posted by 한국여성재단
,